하이큐!! - 카게야마 토비오
드림 전력 주제 : 세레나데
* 전력 90분() 설정은 토비오x음악부(보컬) 드림주.
드림전력 [내 손을 놓지 말아줘]와 설정 일부 겹치지만 저쪽을 읽지 않으셔도 설정 이해에 전혀 상관 없습니다.
성대를 다쳤다. 수술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이고 지옥과 현실을 오가는 듯한 절망감에 빠져있다가, 다시금 소리를 내는 연습-나는 대충 재활훈련이라고 불렀다-을 할 때마다 기분이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럴 때마다 휴대폰을 보면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이름과 함께 따뜻한 격려가 담긴 메일이 와 있었고, 종종 나를 찾아와서 직접 응원을 해 주기도 했다. 덕분에 나는 무사히 목소리를 되찾고 다시 노래할 수 있게 되었다.
"실례합니다!"
한 달 정도가 지난 어느 날의 점심시간이었다. 카게야마 토비오는 오늘도 음악실 문을 노크했다. 문을 조금 열고 고개를 빼꼼 내민 그에게 나는 기꺼이 자리를 내 주었다. 오늘은 부활동이 있는 날이라서 수업이 끝난 후에는 오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점심시간에나마 시간을 내서 찾아와준 것이다.
"선배. 노래 듣고 싶어요."
피아노 곁에 끌어다 놓은 의자에 앉자마자 카게아마는 어제와 똑같은 부탁을 했다. 언제나 같은 목소리, 같은 말투. 또 기대감에 찬 얼굴. 카게야마는 내가 수술을 하기 전에도 종종 음악실에 들르곤 했지만, 재활을 마친 후에는 조금 더 잦은 빈도로 나를 찾아왔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내게 표현했다. 카게야마 나름의 응원 방식이었다. 선배의 노래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계속 노래해달라고 말하듯이.
어떤 곡을 들려줄까. 고민하며 피아노 건반을 하나씩 눌러보다 어느 지점에서 손을 멈췄다.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때의 버릇인데, 이렇게 쭉 음을 더듬다가 귀에 들어오는 음이 있으면 비슷한 음계에서 시작하는 곡을 연주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버릇이라서 내가 이렇게 손을 멈출 때마다 카게야마는 표정을 확 펴고 눈을 빛낸다. 본인은 눈치를 못 채는 것 같아서 말해주진 않았다.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랄까.
"......영어?"
두 소절 정도를 부르자 카게야마가 작게 중얼거리며 난감한 얼굴을 했다. 내가 선택한 곡은 팝송이었다. 나는 연주를 끊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카게야마가 요즘 쪽지시험 대비 영어 공부-물론 벼락치기-를 하느라 머리에서 김이 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나도 조금 도와줬었는데, 오만상을 하고는 대체 왜 영어같은 걸 배워야 하냐며 입을 삐죽 내밀던 카게야마의 얼굴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지금 영어를 들으면 시험 생각나서 스트레스받겠지?
"듣고 싶은 곡 있어? 아무거나, 분위기라든지."
카게야마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 노래 선배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뭔가 비장한 각오를 다진 듯 주먹을 꽉 쥐고서 더 듣고 싶다고 말했다. 나를 위해 괴로움을 극복해주겠다는 그 의지, 잘 받았다. 왠지 그 분위기에 맞춰주고 싶어서 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 마음을 담은 곡을 들려줄게."
"! 무슨 내용인데요?"
장르는 같은 팝송이지만 곡은 바꾸기로 했다. 조금 더 감미로운 선율과 부드러운 목소리로.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서 너에게 전하는 세레나데.
"음... 노력하는 너를 응원하는 노래."
시작하는 가사는, '가장 사랑하는 너에게'.
*
......
다시는 카게야마 토비오의 호기심과 근성과 암기능력을 무시하지 않겠습니다.
"선배!!!"
다음날 카게야마는 조금 거칠게 음악실 문을 열어젖혔다. 얼굴은 붉게 물들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 모습이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어 있었다. 뭐야 이거, 운동장 끝에서 전력질주라도 한 거야? 당황하며 얼른 의자를 내 주었는데, 카게야마는 음악실 문을 닫자마자 답지 않게 쭈뼛거렸다.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자신있게 말하지도 못했다. 달리기를 해서 힘든가 싶었지만 저, 저기... 하며 한껏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거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았다.
"무슨 일인데 그래?"
"저... 질문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
"으, 응. 뭔데?"
어떻게든 의자에 앉은 카게야마는 그 후로도 한참 동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걸까. 목소리를 듣기 위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는데, 갑자기 고개를 젖히며 우렁차게 대답하는 통에 깜짝 놀라서 움찔하다 피아노에 손을 부딪혔다. 아프다.
"...선배가 어제 들려주신 노래, 가... 그... 애, 애이, 애인한테 불러주는, 곡...이라고 들었습니다!"
"뭐?!"
"진짭니까?!"
손을 감싸 쥐고 있는데 이번에는 카게야마의 말이 머리를 세게 때렸다. 아니, 뭐, 그게, 맞아. 맞긴 맞는데 얘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카게야마 토비오는 영어를 들을 때 모국어만 할 줄 알면 됐지 굳이 영어를 알아야 하냐며 종종 불평을 한다. 콤비인 1학년 히나타 쇼요가 단순한 영어 문장을 말할 때 긴장하는 눈빛을 보이기도 한다. 그 정도로 카게야마는 영어와는 연이 없는 아이가 아니었던가. 마치 내가 스포츠를 못 하듯이.
"왜, 왜 그렇게 생각했어?"
나는 일단 차분하게 그에게 물었다. 그러자 카게야마는 또 조금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응원해준 마음이 고마워서 노래를 기억하려고 했단다. 가사는 모르지만 음을 외워서 부르고 다녔더니, 그거 요즘 유행하는 고백 노래 아니냐며 3학년 선배가 가르쳐 줬다고. 그 3학년 선배는 누구길래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거야.
카게야마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절로 그와 같은 포즈가 되었다. 눈 둘 곳이 없어서 고개를 숙였더니 카게야마의 손과 다리가 눈에 들어와서 열심히 눈동자를 다른 곳으로 굴려야 했다. 진짜냐며, 카게야마가 다시 한 번 내게 물었다.
"미안."
"...역시 아닙니까?"
카게야마의 목소리가 조금 차분해진 것 같았다.
"맞아서 미안한 거야..."
이번에는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보니 카게야마가 입을 벌리고 동상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기, 기분 나빴다면 미안. 놀리려던 게 아니야. 정말, 그러니까, 그, 진심... 이었는데...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기도 하고 민망함이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얼굴도 들지 못했다.
"그러면 선배 저 좋아해요?"
"......응."
그야, 솔직히, 너한테 안 반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니냐. 충분히 멋있고 실력 있고, 또 배구를 그렇게 좋아하는 애가 연습시간 쪼개서 나를 만나러 와 주질 않나 아프다니까 연락도 자주 해 줬고. 재활 기간엔 시간 나면 틈틈이 찾아와서 격려해주고, 회복 후에도 나를 기다려주었다. 또 이렇게 점심시간에 나를 찾아와서 매일 응원해주고 곁에 있어 준다. 이 정도면 어떤 철벽도 뚫을 수 있는 공략법이잖아. 물론 전부 본인은 노리려는 의도 따윈 손톱만큼도 없이 한 행동이겠지만!
"......"
"......"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아, 도망가고 싶다. 아주 간절하게 도망치고 싶다. 차라리 그냥 어제 솔직하게 말할 걸 그랬어! 스스로의 비겁함에 화가 나기 이전에 민망해서 죽을 것 같았다. 카게야마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무릎에 얹은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 생각 중인 듯했다. 나는 고개를 살짝 들어 힐끔 카게야마를 올려다봤다.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눈이 마주쳐서 서로 어깨를 움찔했다. 우리 이런 거 너무 잘 맞는다고 생각 안 해?
"저도!!"
"깜짝이야!"
"저, 저도 선배 많이 좋아합니다!!!"
카게야마는 다시 주먹을 꽉 쥐고서 우렁차게 외쳤다. 운동부의 기백은 가끔 적응이 안 될 때가 있다. 이번엔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몸이 말을 안 들었다. 카게야마는 그런 나를 보며 헛기침을 한 번 했다.
"저도, 선배 많이 좋아합니다."
그리고 '저와 사귀어 주세요' 라고, 카게야마는 교과서를 읽듯이 또박또박 말했다. 긴장한 것이 내게도 전해질 정도였다.
종종 느끼는 건데, 카게야마 토비오는 앞뒤를 잘라먹고 말해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날이 있는가 하면 본인의 진심을 직구로 던져서 또 사람을 당황시킬 때가 있다. 오늘의 경우는 단연코 후자다. 어디서 또 고백은 멋지고 당당하게 해야 한다는 말이라도 듣고 온 게 아닐까. 그 예상이 사실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의 일이다.
나는 일단 열이 오른 얼굴을 차가워진 손으로 꾹 눌렀다. 고백이라는 거 원래 이렇게 어색하고 부끄러운 거였나. 나는 자꾸만 천장이나 바닥, 피아노를 비추려고 하는 눈동자를 어떻게든 돌려서 카게야마를 잡았다. 그, 그럼 우리 사귀는 거다. 오늘부터 1일! 그런 단순한 표현밖에는 말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민망해서 음악실 바닥을 파고 숨고 싶을 정도니까. 그런 마음은 카게야마도 마찬가지였는지,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참 서로 건넬 말을 찾지 못해 음악실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선배."
"응."
"...손... 잡아봐도 됩니까?"
카게야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손을 내어주자 카게야마는 아까 부딪친 곳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공을 많이 다루는 세터라서 그런지 손길이 섬세하다. 괜찮아요? 걱정스레 묻기에 이젠 전혀 아프지 않다며 손가락을 쫙 펴서 보여주었다. 그제야 안심한 얼굴을 했다.
"저기, 카게야마. 나 너한테 들려주고 싶은 노래 있어."
피아노를 내려다보자 카게야마가 얼른 손을 놓아 주었다. 방금 전까지의 부끄러움은 온데간데없이 또 눈을 반짝인다. 어떤 곡인데요? 그 물음에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세레나데."
"세레...?"
"연인에게 들려주는 노래."
카게야마의 표정이 또 단숨에 바뀌는 것을 구경하다 보니 속에서 뭔가 간질간질한 것이 피어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가의 선율은 포근하고 따뜻했다. 가사 한 단어 한 단어에 진심을 담아서 카게야마에게 전했다.
"저도 선배 많이 좋아합니다."
I love you. 연주 위에 실린 간결한 고백을 카게야마는 이해한 것 같았다. 대신 거기 말고는 못 알아들었습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바람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카게야마가 그다음 내용을 물어왔다. 나는 카게야마의 손을 잡았다.
"사랑하는 너에게. 나의 전부인 연인에게."
뭐 대충 그런 뜻이야. 수줍어하는 카게야마의 얼굴을 보는 건 상당히 즐거워서 이러다 구경하는 게 버릇이 될 것만 같았다. 앞으로 더 많이 들려줄 테니까 더 다양한 얼굴을 보여줘. 장난스레 말하자, 카게야마는 지금 얼굴 진짜 이상할 테니까 보지 마세요, 하며 나를 껴안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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