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큐!! - 쿠로오 테츠로 드림
오늘도 전...력 60분을 하다가 대실패한김에 따로 업로드.
* 판타지. 뱀파이어 AU. 헌터 쿠로오x뱀파이어 드림주.
고어나 잔인한 부분은 거의 없음 유혈묘사는 있음.
쿠로오 테츠로의 집 안은 답답하기 짝이 없다.
온갖 은제 기구에 성수에, 흡혈귀 퇴치용 무기까지 늘어놓은 장식장은 멀리서 쳐다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어두운 색의 커튼으로 빛을 어느 정도 차단했음에도 눈동자만 굴리면 방 곳곳에 놓여 있는 무기가 눈에 들어온다. 침대에 누운 채로 고개를 돌리면 손이 닿을 거리의 협탁 위에는 나이프, 서랍 안에는 또 성수. 그 아래 서랍에는 총과 탄환. 물론 흡혈귀 사냥용 특수 탄이다. 실로 끔찍한 곳이 아닌가. 솔직히 흡혈귀인 내가 여기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일이다.
죽은 듯이 침대에 누워 있으니 방문 너머로 말소리가 들린다. 이 집의 주인이자 뱀파이어 헌터인 쿠로오 테츠로 씨는 오늘도 바쁜 모양이었다. 미적거리며 다시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허리 아래까지 내려간 이불을 끌어올리다 들어오던 쿠로오에게 딱 걸리고 말았다.
"잘 잤어?"
통화를 마친 쿠로오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피곤한 듯 인상을 쓴 채로 문을 열었다가 나를 보고는 얼굴을 푼다. 화면을 끈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대충 던져 놓고 나를 끌어안으며 침대에 도로 누웠다. 일 안 가? 묻자 제 얼굴을 내 어깨에 파묻고는 오늘 오후는 켄마가 가 있으니까 괜찮아, 하고 대충 대답한다. 그의 등을 토닥이며 시계를 보았다. 4시를 조금 넘은 시각. 지금부터 슬슬 저녁준비를 하면 느긋하게 먹고 나갈 수 있을 만한 시간이다.
"테츠로. 저녁엔 나가야 한다며."
"응."
"일어나야지."
"꽁치 먹고 싶어."
"없어."
나른한 목소리를 듣고 있자니 맥이 탁 풀리는 것 같다. 나 일어날 힘도 없으니까 좀 놔 봐. 그의 팔을 흔들어도 놓아 줄 기미가 안 보이기에 쿠로오의 기묘하게 뻗친 머리를 살짝 잡아당겼더니 비명과 함께 몸을 조금 떼고는 코앞에서 나를 쏘아본다. 그래봤자 하나도 안 무섭네요.
"너 진짜 이러기냐."
"나 이제 손 까딱할 힘도 안 남았으니까 말로 할 때 그냥 떨어져."
"늦잠 자니까 그렇지."
쿠로오가 부스스한 내 머리를 대충 정리해주며 몸을 일으켰다. 침대 끝에 걸터앉고는 나를 번쩍 들어서 제 무릎 위에 앉힌다.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는 것이 마치 마리오네트라도 된 기분이다. 그는 그대로 협탁 위로 손을 뻗어 나이프를 집고 망설임 없이 반대쪽 손끝을 베었다. 벌어진 상처에서 순식간에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마셔."
"……"
"얼른."
잠시 망설이자 쿠로오가 내 입가로 손을 옮기기에 그의 손을 잡고 상처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혈액이 입 안으로 흘러들어오며 비릿한 냄새가 났다. 솔직히 맛있냐면 그렇지는 않은데, 이걸 마시면 갈증이 해소된다. 한참을 마시니 서서히 기운이 돌아오는 것 같다. 혈액이 응고되기 시작할 쯤 마지막으로 상처를 핥자 쿠로오가 나를 토닥이며 흡족하게 웃었다.
"이제 괜찮아졌어?"
"응."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저녁 메뉴 이야기를 한다. 뭘 먹고 싶냐고 묻기에 여느 때처럼 '아무거나' 라고 대답했다가 혼이 났다. 잘 먹어야 활력이 생긴다고. 그는 힘없이 대답하는 나에게 이미 상처가 깨끗하게 아문 손을 보여주며 자, 괜찮아졌지? 하고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를 만난 것은 반 년 전이었다.
나는 인간으로 태어났고, 어떠한 이유로 흡혈귀로 각성했지만 각성 후에도 별로 달라진 건 없었다. 이성을 잃지도 않았고, 피를 좋아하게 되지도 않았고, 햇볕에 피부가 타거나 어둠을 편안하다고 느끼게 되지도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나는 어두운 곳이 싫다. 인간의 것이든 동물의 것이든 피는 맛이 없다.
살기 위해서는 흡혈을 해야 했지만 그 때의 내겐 딱히 살아가야 할 이유 같은 것도 없어서, 좀비처럼 밤길을 어슬렁거리다 별 수확 없이 돌아오는 일이 많았다. 혈액 공급이 안 되니 자주 갈증과 현기증이 났다. 가끔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넘어지기도 하고 수시로 휘청거리기도 했다. 그냥 이러다 어딘가에 쓰러져 있으면 지나가던 헌터가 적당히 마무리를 지어서 데려가겠거니. 그 정도의 생각 밖에는 없었다. 죽은 뒤의 일 같은 건 알 게 뭐람.
"……인간이잖아."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헌터를 발견하긴 했는데, 하필이면 이상한 사람에게 걸렸다. 외진 골목의 벽에 기댄 채로 주저앉아있는 나를 내려다보다가 복잡한 얼굴을 한다. 그리고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신상 정보-라기엔 뭐 하는 사람이냐 정도-를 묻기에 비밀이라고 튕겨줄까 하다가 그럴 힘도 없어서 대충 대답해 주었더니 손에 들고 있던 총을 홀스터에 되돌린다. 뱀파이어 앞에서 무기를 집어넣다니 배짱 한 번 좋네.
"안 죽여요?"
"사람을 뭘로 보고."
"뭘로 보긴, 어딜 어떻게 봐도 헌터인데."
이러다 내가 눈 돌아서 당신 잡으면 어쩌려고. 협박 같은 말을 던져 봤더니 그가 피식 웃으며 나를 안아들었다.
"너 같은 애들 구하려고 내가 이 일 하는 건데 죽이긴 왜 죽여."
"……진짜 특이한 사람이야."
"헌터한테 신상정보 술술 부는 너도 평범하진 않은 인간이지."
"나 아직 인간처럼 보여요?"
"어딜 어떻게 봐도 인간이네요."
졸지에 이상한 사람끼리 만난 꼴이 됐다.
자신을 쿠로오 테츠로라고 소개한 그는 나를 데리고 곧장 본인의 집으로 직행했다. 그리고는 성수와 온갖 은제 무기가 가득한 방에 나를 내려놓고 대뜸 자기 피를 마시게 했다. 뭐야 이거, 신종 사냥 방식? 낚시? 흡혈귀 괴롭히기? 의심도 해 봤지만 정말 그게 다였다. 가끔 피를 주기도 하고 맛있는 걸 해 주기도 하고 재워 주고……. 뭐 하는 사람인지는 반년이 지난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는 꽤 세심하게 나를 돌봐 주었다. 이유를 묻자 그냥 네가 죽지 않았으면 해서. 라는 간단한 답변이 돌아왔다.
"너처럼 세상만사 다 포기하고 혼자 이상한 데 틀어박혀서 나 죽여줍쇼, 하고 있는 애들은 가만히 못 놔두겠더라고."
"오지랖이 심하네요."
"그런 말 자주 들어."
그로부터 며칠이 더 지났을 쯤에 쿠로오는 여기서 같이 살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 혼자 사는데. 너 어차피 기다리는 사람도 없다며. 태연하게 말하기에 그쪽 길고양이 같은 거 주워서 기르고 그러진 않냐고 물었더니 동물도 사람도 주워본 건 처음이란다. 뭐 그야 사람은 처음이겠지. 생각할수록 정말 이상한 사람이었는데, 오랜만에 느껴 본 온기를 거부할 수 없었던 그 때의 나도 만만찮게 이상한 인간이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 나를 인간이라고 말해준 사람은 그가 처음이었던 것도 있고.
숨 막히던 공간이 점점 아늑하게 느껴졌다. 이상하고 외로운 사람 둘이 만나서 묘한 시너지를 일으킨 것 같았다. 우리는 의외로 잘 맞았다. 어쩌다 보니 같이 살던 와중에 서로 좋아하게 되기도 했고. 지금은 연인도 됐고. 사람 일은 정말 모른다니까.
"슬슬 나갈 시간이네."
해가 지고 창 밖에 어둠이 깔릴 무렵 쿠로오가 주섬주섬 무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좀 멋있게 할 수 없어? 모양 빠지게 그게 뭐야. 준비 중인 그를 힐끗 쳐다보다 불평하자 쿠로오가 성큼성큼 다가와서 내 머리를 꾹 누른다. 알았어. 내가 말 잘못 했으니까 누르지 좀 마. 키 줄어들면 어떡해! 손을 잡아다가 던지듯 휙 떼어냈더니 그가 웃으며 반대편 손에 들고 있던 총을 홀스터에 집어넣고 내 손을 잡았다.
"가자."
얹혀사는 만큼 밥값은 해야지. 처음엔 그렇게 따라 나섰던 길인데, 어느 샌가 그를 지켜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네가 나를 구해 줬던 것처럼 이번엔 내가 너를 도와주고 싶다고. 그래서 오늘도 그를 올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테츠로. 오늘도 내가 지켜 줄게."
"너나 안 다치게 조심해."
"나 밤에는 엄청 센데?"
"그러시겠지."
놀리듯 말하는 쿠로오의 손을 있는 힘껏 잡았더니 비명이 새어 나온다. 마주보며 웃다가 다시 한 번 손을 고쳐 잡았다. 내일 아침 메뉴 같은 평온한 이야기를 하며 위험한 현실 속으로 뛰어든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함께 있고 싶으니까. 오늘도 지켜 줄게. 다치지 마. 마음속으로 간절히 바라며 밤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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